[자작나스] 은전 한 닢
피천득의 '은전 한 닢'이란 수필 기억나실 겁니다. 뭐 거지가 여차저차해서 나름 거금인 은전 한 닢을 모았다는 얘기죠. 왜? 그냥 갖고 싶어서..저도 그냥 갖고 싶어서 시작했습니다. 하루하루 빚만 갚으면서 사는 삶이 너무 지루해서요. 목표는 최고 스펙의 918+ 헤놀로지! 현재 쓰고 있는 Microserer gen8을 이제 슬슬 보내줄 때가 된 거 같아서 시작해봤습니다.
시스템 구성 전 조건은 이러했습니다.
1. 현재 Xpenology는 xs3615/3617에서 ds918+로 대세가 넘어가는 중이므로 918+에 어울리는 하드웨어일 것.
2. 나름 서버급으로 돌리는 입장이기 때문에 최소한의 안정성을 보장할 것, 최소 웍스급 보드, 가능하면 메이저급 서버, 그리고 ECC 지원
3. 최소 4베이 이상급의 확장성과 10G 및 SAS 12Gb/s 지원, 크기는 되도록 작게
비교적 심플하지 않나요? 시작 전에는 너무너무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은전 한 닢' 속의 거지처럼 꼬박 6개월이 걸려서 완성하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이놈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새로운 나스의 조건을 충족하는 CPU가 현 시점에서는 극히 제한적이거든요. 918+는 8코어까지만 지원하는데, 그렇다면 최고 스펙으로 가능한 CPU는 쿼드코어 또는 옥타코어뿐입니다. 헥사코어 해봤자 이도 저도 안 되거든요. 헌데 최고스펙으로 하자고 해놓고 쿼드로 가는 건 좀 ㅎㅎㅎ. 그래서 옥타코어로 진행합니다. 그리고 918+의 장점하면 뭔가요. 바로 트랜스코딩이죠. 이것만 아니면 그냥 Microserver gen 10 plus 갔으면 깔끔하게 끝이 났을 겁니다. 하지만 HP는 역시 대단한 놈들이기 때문에 Microserver gen 10 plus는 내장그래픽(이하 iGPU)를 지원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벤더제품은 사실상 나가리고 조립 가능한 CPU는 현실적으로 2개입니다. 제온 E-2288G, 제온 W-1270. 그 중에서 좀 더 최신인 W-1270을 몇 달간 잠복해서 직구에 성공합니다. 대략 45만원선.
보드는 비교적 구하기 쉬웠습니다. 국내소매점에서 제온 W-1200시리즈는 구할 수 없지만 W480M 보드는 구할 수 있거든요. 기가바이트의 W480M 제품입니다. 당연히 램은 ECC 16GB X 2로 꽂아줍니다. 2933MHz 제품이었으면 더 좋겠지만 직구로도 구하기 힘들어서 이 부분은 타협했습니다. 삼성 2666MHz ECC DDR4 입니다.
진짜 고난은 이제 시작됩니다. 3번 조건인 SAS 12Gb/s 및 4베이 이상 케이스가 없습니다. 대형케이스 쓰면 해결이지만 그래도 나스인만큼 통신랙에 들어갈 정도의 사이즈 이상은 곤란했거든요. 한참을 찾다가 발견한 제품이 하나 있습니다. 몇 번 댓글을 통해 소개해드린 적이 있는데, https://caseend.com/case/tank-h6/ 이 제품입니다. 완벽한 조건의 제품인데 아직 예약주문 상태여서 먼저 부품들을 모으기 시작합니다.
ID-COOLING의 IS-30 입니다. TANK H6 케이스가 극도로 제한적인 쿨러사이즈(caseend 쪽 정보로는 33mm)였기 때문에 옥타코어의 발열을 해소시켜줄 수 있는 제품이 사실상 없습니다. 요 제품만 33mm 이하에서 유일하게 TDP 100W를 소화해줍니다.
아마존발 FLEX-ATX 파워서플라이입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FSP의 FlexGURU 500W GOLD 제품입니다. 대략 20만원선. 알리에서 찾아보면 델타 등 다른 메이저급 FLEX-ATX 파워를 구할 수 있긴 한데, 믿을 수가 없어서요.
FLEX-ATX 제품인데 무려 8핀을 2개 지원합니다. 나중에 게임용 서버로 변신시켜달라는 건가 봅니다.
3월 11일에 주문한 제품이 이틀전에 왔습니다. 연기에 연기를 거듭해서 케이스배송만 3달이 걸렸네요. 그래도 제법 마감상태도 좋고 기대에 충분히 부합하는 좋은 케이스입니다.
mITX가 아니라 mATX이기 때문에 확장이 자유롭습니다. 다만 후면부 확장슬롯 커버가 설계가 잘못되었습니다. 카드들이 메인보드 슬롯에 완벽히 들어가지 않고 약간씩 뜹니다. 그래도 인식에는 무리가 없는 수준.
그래도 작은 크기임에도 나름 공간을 잘 빼놔서 선들이 자리는 잡을 수 있습니다.
쿨러높이가 33mm까지라고 했는데 최소 40mm까지는 들어갈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그러면 통풍면에서는 좋지 않겠죠. 일체형 수냉1열 제품도 고민해봤으나 펌프나가면 골치 아파지기 때문에 구시대적인 공랭으로 그냥 갑니다.
하드베이 후면입니다. SAS/SATA 공용이며 IDE4핀을 통해서 전원을 공급받습니다. 이게 불량이거나 죽으면 골치아파지기는 하지만 그래도 직결하면 되니까요.
Xpenology에 인식이 잘되는 에뮬렉스 10Gbe 랜카드와 H240 레이드 카드입니다. H240 레이드카드는 말이 레이드카드지 실질적으로는 HBA카드에 가깝습니다. 배터리도 캐쉬도 없습니다. 어마어마한 단점이지만 어차피 레이드 구성 생각이 없는 저로서는 따로 IT MODE 펌을 먹일 필요도 없고 프로그램상에서 HBA모드로 변신 가능하다는 점이 되려 장점입니다. 레이드카드 펌업하다가 날려먹는 케이스가 생각보다 좀 되죠.
스펙요약
CPU : Intel Xeon W-1270(8core)
RAM : SAMSUNG DDR4 2666MHz ECC Unbuffered 16GB x 2
M/B : Gigabyte W480M Vision W
PSU : FSP FlexGURU 500W GOLD
HBA : HP H240 HBA
LAN : Emulex OCe11102(차후 Intel X550 T2로 변경예정)
CASE : TANK H6
COOLER : ID-COOLING IS-30
메인컴이 젠1 1700입니다. 나스가 이렇게 고사양이 필요한가? 사실 필요없습니다. 지금 쓰는 제온 E-1225V2 로도 충분합니다. 그냥 갖고 싶었습니다. 아마도 감히 현 시점에서는 918+을 완벽히 지원하는 최고사양이 아닐까 싶습니다. 한 순간에 만족에 200만원 가량을 태운 것 같네요. 하지만 만족합니다. 이렇게라도 스트레스를 풀어야 다시 힘내서 열심히 빚을 갚지요 ㅎㅎ
P.S
네이버에서 은전 한 닢을 검색해보니 아래와 같은 문구가 있네요.
"아무 것도 가진 것 없는 거지이지만 은전 한 닢을 갖겠다는 소박하기 짝이 없는 목표를 세우고 여섯 달에 걸친 각고의 노력 끝에 이를 달성한 것은 매우 고귀한 행위로 평가될 수 있다. 마침내 제 것으로 갖게 된 은전을 앞에 놓고 흘리는 거지의 눈물은 감동적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뚜렷한 목적 없이 교환 수단에 불과한 은전 그 자체를 탐하는 거지의 집착은 인간의 욕망이 얼마나 어리석고 허망한 것인지 환기시켜주기도 한다."
왠지 뜨끔하지만, 가끔씩은 어리석은 걸 알면서도 행하게 됩니다. 하하하;